[32회]윤기열 대표 “대한민국 제조업을 살릴 수 있는 서비스” 표방
[한국일보=최연진 기자] 과거와 달리 요즘 기업들은 공장을 갖고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이나 주문자개발생산방식(ODM)으로 별도 업체의 공장에 생산을 위탁 주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다.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줄만한 공장이 어디 있는지, 해당 공장이 어느 정도의 설비와 생산력을 갖고 있는 지 찾는 과정이 만만찮다. 때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서 정작 제품 개발을 해놓고도 생산을 하지 못해 곤란을 겪기도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윤기열 볼트앤너트 대표는 "제조업체들을 망라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우리 제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분야별로 다양한 공장을 세밀하게 검색 가능
독특한 신생(기업) 기업 볼트앤너트의 윤기열(28) 대표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볼트앤너트는 제품을 개발한 기업이 제조를 맡길만한 공장을 찾아주는 플랫폼 서비스업체다. 생산시설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 특히 작은 기업들에게는 가뭄 뒤 단비 같은 서비스다. “기업들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현실화 해 줄 생산시설을 찾아주는 일을 합니다.”
윤 대표는 “기업들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좋은 공장을 만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강조했다. “좋은 생산업체라고 생각해서 제품 생산을 위탁했는데 불량이 발생하거나 원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전국 어디에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지 정리된 자료가 거의 없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많이 생산시설을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갖고 있거나 공개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신생업체나 작은 개발업체들은 어디서 어떤 제품을 잘 만드는지 알기 힘들죠.”
볼트앤너트의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외주 생산을 맡기고 싶은 기업은 회사 이름과 같은 홈페이지(boltnnut.com)에서 회원 가입을 한 뒤 개발을 원하는 제품을 등록하면 된다. “어떤 기술이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하는지 입력하면 여기 맞는 생산업체들이 입찰하는 방식입니다.”
생산을 맡기려는 업체는 지원한 생산업체 가운데 선택해 만나보고 결정하면 된다. 볼트앤너트는 거래가 일어나면 중계 수수료를 받는다. “지금은 웹사이트로만 제공 중인데 실시간 알림 기능이 들어있는 응용 소프트웨어(앱) 서비스도 기획중입니다.”
볼트앤너트의 독특한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올해 초 기준 150곳이 넘는 제조업체들이 제휴사로 합류했다. “제휴를 원하는 생산업체들을 일일이 찾아가 시설을 둘러보고 경영자를 만나서 재무상태 등을 확인합니다. 어떤 장비를 쓰는지, 어떤 제품을 만들었는지, 직원 숫자나 시설 등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죠. 매일 2,3군데 제조업체들을 만나서 상담을 한 뒤 등록하고 있습니다.”
볼트앤너트에서 찾을 수 있는 기업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디자인만 전문으로 하거나 금형 사출 전문, 부품이나 완제품을 만드는 공장부터 회로 설계 및 제품 설계와 시험까지 대신해주는 종합 생산업체까지 찾을 수 있다. “혼자서 운영하는 1인 사무실부터 수백억 매출을 올리는 공장까지 다양합니다.”
지금까지 볼트앤너트에서 생산을 위한 상담만 100건이 넘게 진행됐다. “거래액이 몇 천만원 이상의 계약들이 많아서 중계 수수료가 적지 않습니다.”
수수료는 생산시설이 받게 되는 거래 금액의 0.5~1%다. 윤 대표는 주문을 맡긴 곳이나 생산업체의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수수료를 책정했다. “수수료를 많이 받으면 생산을 의뢰한 기업에 전가됩니다. 하청에 하청을 주는 대기업식 재하청 구조에서는 최초 하청을 맡긴 업체에서 30~40% 수수료를 가져가기도 합니다.”
쉽게 생산시설을 찾을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와 낮은 수수료가 볼트앤너트의 장점이다. 덕분에 생산업체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중소업체나 스타트업들이 고비를 넘긴 경우가 더러 있다. “자세 교정해주는 사물인터넷(IoT) 방석을 만드는 스타트업, 농장에서 돼지의 번식을 돕는 기구 개발업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들이 어려운 순간에 제조업체를 만나 제품까지 만든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윤 대표는 제조업체들의 해외 수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얼마전 싱가포르 의료기구 제조사에서 한국에 60만개의 스마트밴드 생산을 맡기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 왔다. 그는 이 문제를 여러 공장들이 함께 만드는 컨소시엄 구성으로 푸는 방안을 고민했다. “제품 구성에 필요한 각 분야별 제조업체들을 컨소시엄으로 묶어서 해외업체에 연결해 주면 단일 업체에서 할 수 없는 일들도 가능합니다. 아직도 해외에서 한국 제조업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볼트앤너트의 제조업체 연결 플랫폼 페이지. 볼트앤너트 제공
◇교육 재단 설립을 꿈꾸는 문학도의 여정
중학생 시절을 캐나다 토론토에서 보낸 윤 대표는 정보기술(IT)이나 제조업과 전혀 상관없는 비교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다. 하지만 그는 문학보다 사업에 더 관심이 많다. “원래부터 창업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중국에서 사업할 것에 대비해 교양을 쌓자는 생각에 비교문학을 선택했죠.”
그는 대학교 2학년때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여러 일을 해봤다. “처음에 교육 플랫폼 사업을 했고 곤약으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거나 소시지를 만드는 일에도 도전했어요.”
그 중에 미세먼지를 떨어내는 청소기 개발은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제조업체를 찾는 과정이 힘들어서 결국 포기했어요. 제품 설계를 해놓고 원하는 비용으로 만들어 줄 만한 제조업체를 찾지 못해 만들지 못했습니다.”
전동 킥보드에 장착하는 분실방지 장치도 마찬가지였다.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했으나 제대로 회로 설계를 할 만한 제조업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윤 대표는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모아서 지난해 3월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좋은 제조업체를 찾지 못해 사업을 접은 창업자 5명과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마침 김희천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담당하는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스타트업 익스프레스에 합격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윤 대표는 볼트앤너트 서비스가 “대한민국 제조업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일본에는 제조업체들을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를 제공하면 제조업체나 이들이 필요한 기업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제조업체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우리 제조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대표의 목표는 나중에 교육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자선 사업하는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미래의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사회 공헌에도 적극 나서는 사람을 길러 내려면 교육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아프리카 등에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이를 위한 디딤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