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퀘어=민혜진 기자] “기껏 1년을 들여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작품을 냈더니 비슷한 내용의 발표가 이미 있다는 이유로 수상에 실패했다. 선행 조사를 안 해서가 아니라 했는데도 못 찾은 거였다. 학생이 이 정도인데 실제 R&D 현장에서는 기등록된 특허를 찾는 데 드는 비용, 찾지 못해 지난 연구가 헛된 것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오죽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I로 이러한 선행기술조사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서비스 ‘브루넬’을 기획하게 됐다.”
브루넬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특허로 낼 때 이미 비슷한 특허가 없는지 찾는 과정, 즉 선행기술조사를 도와주는 AI 서비스다. 고등학생 때부터 발명, 전람회와 같은 연구활동에 자주 참여했다는 박상준 디앤아이파비스 대표는 기존 포털 검색이 가진 낮은 전문성, 특허전문 검색 서비스가 가진 복잡하고 어려운 검색 방법을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을 때 바르는 피부진정크림을 개발한 사람이 기존 포털 검색 엔진에 이를 그대로 입력하면 검색 결과는 무수할지라도 유사 특허는 찾아주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전문 검색 서비스는 긴 검색식을 쓰고 검색 조건도 설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키워드 검색을 하더라도 단순히 키워드가 많이 포함된 순서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피부’란 단어가 포함됐단 이유로 바지 관련 특허가 먼저 뜨거나 ‘크림’ 표현을 근거로 아이스크림 관련 특허를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
“반면 브루넬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을 때 바르는 피부진정크림’이라든지 키워드 방식이든지 이용자가 별다른 검색 기술 없이 평소 표현 그대로 입력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자체 알고리즘이 그 내용과 의미, 기술 분야를 파악해 유사특허를 빠르게 찾아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기 위한 3대 요소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도 1년 6개월이 걸렸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형태소 분석기. 이는 문장을 의미 단위로 잘게 쪼갠 다음 특허 분야에 맞게 다시 튜닝하는 과정에 필요했다. 유의어 사전 기술은 특정 단어가 어느 분야, 기술에서 언급됐는지 파악하는 데 쓰였다. 예를 들어 ‘펌프’란 단어는 샴푸 제품 특허에도 쓰이고 자동차 특허에도 쓰이지만 맥락에 따라 그 함의가 달라지므로 이를 파악할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유사특허를 골라내주는 머신러닝 알고리즘까지 3가지 기술을 융합한 결과 브루넬은 특허에 최적화된 의미 분석, 검색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역시 브루넬을 통한 선행조사를 거쳐 2개월만에 특허 등록을 마쳤다.
자연어 검색과 더불어 차별화 기능은 2가지 더 있다. 첫째로 ‘도면 퀵뷰’는 특허별 퀵뷰 버튼을 누르면 빠르게 연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그림과 도면을 보여준다. 다음은 한국어로 검색해도 미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해외 특허를 알아서 찾아주고 이 역시 바로 번역해서 보여주는 기능이다. 해외 특허는 매일 새로이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언어 장벽을 낮춘 덕분에 미국, 유럽에서도 꾸준히 이용자 유입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특허 검색서비스인 만큼 타겟고객이자 실제 주요고객은 선행기술조사 업무가 잦은 변리사와 특허법인, 특허사무소다. 박 대표는 “변리사의 실제 니즈를 반영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법률 용어, 현직에서만 쓰는 용어, 혼동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표현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변리사 수백 명을 직접 만나 왜 브루넬을 쓰고 싶은지 왜 쓰고 싶지 않은지를 물었다. 얼마 전에는 변리사를 직접 팀에 합류시키기도 했다”며 “변리사는 브루넬의 수입원이 아닌 파트너다. 이들이 브루넬을 많이 사용할수록 학습을 통해 AI 성능도 더욱 좋아지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라 전했다.
따라서 변리사를 위해 부가적인 기능도 덧붙일 계획이다. 연구원 혹은 기업 고객이 브루넬에서 아이디어를 검색하면 알고리즘을 활용해 해당 아이디어가 화학, 기계를 비롯해 어떤 분야에 속하는지 확인한 다음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변리사 리스트도 제공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돈을 받고 특정 변리사를 알선하는 형태가 아니다. 영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변리사를 위해 무료 옵션을 제공할 것”이라 밝혔다.
추가하고 싶은 기능이 더 있는지 묻자 “붙이고 싶은 기능은 너무 많다”며 박 대표는 “우선 이용자 편의성을 개선하고 앞에서 말한 대로 연구원, 기업 고객에 분야별 변리사 추천 리스트를 제공, 주요 고객이자 파트너인 변리사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전했다. 또 “초기 기획에는 포함됐지만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보류해야 했던 상표 혹은 디자인 특허를 위한 유사 이미지 검색 서비스, 특허 출원 거절 사유가 되곤 하는 기재불비(명세서에 기재한 상세 설명이 불충분하거나 청구 범위에 기재할 요건을 구비하지 않은 상태) 사항을 잡는 기능도 언젠가 꼭 선보이고 싶다”고 박 대표는 덧붙였다.
브루넬 웹페이지 화면. 출처 – 브루넬(brunel.ai) 홈페이지 캡처
관련 기술, 시장 트렌드를 대시보드 형태로 분석해주는 ‘브루넬 노트’란 서비스도 함께 언급했다. 이용자 아이디어와 비슷한 특허, 새로이 올라온 특허, 경쟁사 출원 현황, 연도별 출원과 기술 발전 동향을 도표화하고 실시간 보고하는 방식이다. 이는 올해 안에 출시할 SaSS 형태 프리미엄(Free-mium) 상품에 덧붙일 유료 회원 전용 기능이기도 하다.
노트를 통해서는 주요 고객도 변리사 중심에서 기업과 연구원, 교육기관으로 넓힐 수 있을 거란 기대다. 현재 MVP 단계를 지나 국내 기관, 대기업과도 협업 논의를 주고 받았으며 글로벌 정보기술 연구 자문사인 가트너로부터는 어드바이저로 합류하고 싶다는 제안도 받았다. “노트를 글로벌하게 사용한다면 기술의 세계적인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박 대표는 “가트너와의 논의를 계기로 본투비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도 갖게 됐다”고 전했다.
특허 분야뿐 아니라 자사 AI 기술력을 접목할 분야도 새로이 모색할 계획이다. “당장은 브루넬을 첫 선보인 상태지만 디앤아이파비스는 본래 ‘테스트 어시스팅 AI’란 비전과 대전제를 가지고 시작한 회사다. AI 기술이 실생활과 실무에 도움을 주는 모델을 계속 찾아나갈 생각이다. 핀테크 분야에서 협업한 경험을 살려 기술로 회사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금융과 잇는 기술가치평가 모델, IP담보 대출을 기획해 볼 수도 있다. 나아가 보험 영역에서는 세계 시장 흐름을 고려한 보험 상품 리스크 판단도 해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장벽 없이 협업하면 좋겠다는 바램도 덧붙였다. “인공지능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모델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 대기업, 중소기업, 인공지능 연구자, 데이터 보유자는 서로 기술을 숨기고 데이터 소유권을 주장하는 대신 모두 다같이 협업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AI를 만드는 동시에 우리나라가 AI 시장을 주도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