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주년 특별기획] 일정 구독 플랫폼 '린더' 오정민 대표
구글 캘린더 있으면 포기?…'패기있게 도전해야'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사진=김동훈 기자]
[비즈니스워치=김동훈기자]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SK텔레콤과 카카오가 조용히 중단한 사업이 있다. 스마트폰이나 웹 상에서 캘린더(달력)를 통해 각종 일정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쉽게 말해 화장품 할인 정보 등 기업들이 진행하는 이벤트를 부담 없고 간편한 형태인 캘린더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유형의 광고·마케팅 플랫폼으로 기대됐다.
카카오는 2013년 8월부터 '플러스 캘린더'를 시범 서비스 했고, SK텔레콤은 2016년 1월 '썸데이'를 내놨으나 현재 이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 혁신이 별것인가
사실 아이디어는 지천에 널렸다.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어서다. 이를 제대로 다듬고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란 점에서 상상보다 혁신은 어렵다.
이처럼 강자들도 접고 사라진 시장에 스타트업으로 뛰어들어 사용자 50만명을 넘기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 히든트랙이 2017년 6월 선보인 '린더'(Linder)다.
짐승의 가죽을 벗겨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 담긴 '혁신'(革新)의 관점에서 보면 린더도 일종의 혁신이다. 다른 이들이 제대로 가공하지 못한 가죽을 어떻게든 새롭게 했다는 점에서다.
린더는 800개에 달하는 세일, 페스티벌, 아티스트, 스포츠 경기, 학사, 통신사·금융사 이벤트 일정을 온라인 캘린더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로 구현했다.
히든트랙은 2017년 6월 린더의 PC웹 서비스 출시와 함께 법인을 설립하고 2018년 7월 모바일 앱도 내놨다. 현재까지 누적 구독 180만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애플 앱스토어에서 각각 이달의 앱, 오늘의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사용자가 직접 구독을 결정하고 이용하므로 캘린더에 소개되는 기업의 일정이 광고로 인식하지 않는 점도 강점이다. 이런 까닭에 사용자별 구독 성향에 따른 타겟 광고도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히든트랙을 창업한 오정민 대표는 "사용자들은 린더에 광고가 없어서 좋다고 하는데, 린더는 이미 광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발한 사용성은 이같은 강점을 뒷받침한다. 린더는 15만건 이상의 일정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사용자 1인당 평균 4.5개의 캘린더를 구독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한화생명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지원·육성) 프로그램 지원도 받고 퓨처플레이, 윤민창의투자재단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시장의 인정도 받았다.
린더 서비스 화면. [자료=히든트랙]
◇ 시작은 가볍게 도전은 패기있게
오정민 대표는 린더가 대학생 시절 학교 과제로 시작한 '가벼운 아이템'이었다고 털어놨다. 히든트랙이라는 사명도 학교 앞 술집 이름이었다고 한다. 함께 과제를 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사업해보자고 얘기가 된 것.
게다가 당시엔 현재 모습의 일정 구독 서비스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창업을 위해 모인 멤버들이 세 번째 시도한 아이템이다. 일정 구독 서비스는 오히려 내부의 반대가 극심했던 아이템이었다. 구글, 네이버 같은 곳이 이미 하고 있는 사업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냐는 게 이슈였다.
실제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스마트폰에는 구글 캘린더가 기본 장착돼있다. 국내 대표적 ICT 사업자들인 카카오와 SK텔레콤도 어떤 이유에서든 성공시키지 못한 아이템이다.
창업 멤버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최하는 IT경진대회 이매진컵 등에서 수상하거나 회사 경험도 쌓았으나, 심사위원·상사의 마음을 얻는 것과 시장을 설득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기에 창업 아이템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컸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멤버는 "그 정도는 패기있게 해야 스타트업 아니냐"고 설득했다고 한다.
팀원들은 '패기', '스타트업'이란 키워드에 설득됐고 사업을 시작했다.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사진=김동훈 기자]
◇ 혁신? 사용자를 보라
오정민 대표는 "시작해보니 왜 하기 힘든 사업인지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우선 쓸만한 일정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창업 멤버 5명 수준에서 일정 데이터를 모으고 사용자들이 쓸만하게 가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개된 일정이 혹여 도중에 변경됐는데,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오 대표는 "대기업이 일정 구독 서비스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대목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대학교 수강신청 일자를 잘못 입력했을 때 대기업이 겪을 비난과 신뢰도 하락을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서비스 하나 내놓았다가 실수 한번에 기존 사업 브랜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린더는 어떻게 이런 문제 가능성을 해결하고 있을까. 오 대표는 "사용자 제보를 받아 데이터 정확성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방식은 단순하지만 의미 있다. 사업자와 사용자가 함께 만드는 일정 구독 서비스라는 이미지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으로도 해결방안을 계속 찾고 있으나, 일단 사용자와 함께 개선하며 이른바 '팬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 자체 보완도 사용자와 함께 한다. 온라인 설문도 진행하고 사용자를 회사로 초대해 인터뷰도 진행했다. 오 대표는 "참고할 만한 유사 서비스가 국내외에서 찾을 수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선 사용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사진=김동훈 기자]
◇ 앞으로는
린더의 앞날은 앞으로도 밝을까.
오정민 대표는 지금이 기회라고 단언한다. 시장 환경이 좋다는 얘기다.
기본적인 속성부터 그렇다. 사용자는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정작 필요한 일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고, 기업은 특정 이벤트가 언제 시작돼 언제 끝나는 것을 알리고 싶은 니즈가 있어 시장성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스마트폰 캘린더 서비스에 대한 익숙함이 확산되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는 "카카오와 SK텔레콤이 사업했을 때보다 일정 데이터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며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에서 일정을 구독한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현재 18~24세 연령대를 보면 이런 서비스에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사용자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일정 구독 데이터를 B2B(기업간 거래)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도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대중화의 길을 향해 가는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AI) 스피커다. AI 스피커에 음성으로 일정을 물어보는 수요를 포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린더는 지난해 10월부터 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올 여름 삼성전자의 AI 플랫폼 '빅스비'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기술적으로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만든 일정에 대한 접근성이 과거보다 쉬워졌고, 관련 인력의 전문성도 높아져 데이터 콘텐츠 생산 비용은 낮아졌다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오 대표는 "서비스 고도화와 장기적 관점의 파트너사를 확보 등을 통해 올해 MAU(월 사용자 수) 100만명, 매출액 10억원을 달성하는게 목표"라며 "일정 기반 광고 커머스 플랫폼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도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